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 거란 전쟁/평가/역사 왜곡 논란 (문단 편집) === 25~26회 비판 ([[김훈·최질의 난]] 발생 시기) === * '''무신들 비하''' * '''정당한 분노 및 명분의 비하''' * 난의 근본 원인은 장연우-황보유의가 무신들의 영업전을 빼앗아 문신들의 녹봉으로 쓰는 정책을 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논문들을 통해 황보유의가 관료로서 실력이 좋지 않고 결국 김훈과 최질 등이 문관 겸직에 대한 욕망 또한 작용했겠지만 영업전 건이 '''불만을 품을 만한''' 일이었기에 난을 일으켰다는 것을 중론으로 한다.[* 박종기 (1998) 『11세기 고려의 대외관계와 정국운영론의 추이』, 김두향 (2005) 『고려 현종대 정치와 이계(吏系) 관료』, 김보광 (2014) 『고려 성종·현종대 太祖配享功臣의 선정 과정과 의미』, 오치훈 (2018) 『고려 전시과의 운영과 영업전·구분전』] 실제 고려사에 반란 세력이 요구한 것은 어사대 혁파와 문관직 겸직이 전부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것을 단지 거병의 명분으로만 삼고, 반란 자체는 일어날 일이었던 것처럼 묘사했다. * 결과적으로 앞서 논란이 있던 17~20회는 별 문제 없이 진행된 지방 관제 개편을 억지로 논란으로 만들면서 그 시점엔 별다른 실책이 없던 현종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는 정작 진짜로 현종의 실책이라 평가받는 [[김훈·최질의 난]] 부분에서는 현종을 억지로 미화하는 이상한 청개구리식 묘사를 한 셈이되었다. * '''행패 과장 및 지능 비하''' * 고려사/고려사절요 등은 '겉과 속이 다른', '성품이 거칠고 비루', '문외한', '정사가 어지러워져' 등으로 반란군 정권을 비판하긴 한다. 하지만 이는 어사대 혁파 및 무관들의 정사 참여 이후 어지러워진 정사에 대한 평가다. * 밤의 주연 자리에서 "우리들의 세상"이라거나 "[[만세]]"를 외치며 임금을 참칭하는 등 무례한 묘사는 납득이 어렵다.[* 앞서 [[유금필]]이 인망이 높아 백성들로부터 '만세'를 받자, [[태조(고려)|왕건]]에 의해 숙청을 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강조(고려)|강조]] 역시 군사들이 정변 직후 만세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라서 그들을 타이르기도 하였다.] * 엄연히 임금의 눈 앞에서 대낮에 궁녀를 겁탈하려는 묘사는 납득이 어렵다.[* 후대에 일어난 [[무신정변]]의 주동자들도 엄연히 임금의 여인인 궁녀를 건드리는 일만큼은 벌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들을 성추행까지 하면서 막나간 이들은 [[정균]], [[이지영(고려)|이지영]] 정도의 소수이다. 이지영은 그 시대에도 동생 [[이지광]]과 함께 쌍도자로 불릴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이지광조차 [[무인시대]]에서는 이지영이 궁녀를 겁탈하려 하자 미친 것이냐고 기겁했다.] * 최질이 현종의 면전에서 사적 감정을 담아 중추사 강감찬을 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는 묘사도 납득이 어렵다.[* [[무인시대]]에서는 석린이 명종 앞에서 투구를 던지기 전에 지시한 조원정에게 정말 이래도 되냐고 반문했다. 군주의 권위는 아무리 권신이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 [[핍진성]]이라 엄연히 사료에 남은 사건을 재현함에도 이런 묘사를 추가한 것인데, 이 드라마는 그런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 재상 유진이 "김훈과 최질의 머리로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배후에 박진이 있다는 근거로 삼는 등, 무관들을 멍청한 세력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이들은 앞선 전쟁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싸웠으며, 고위급 무관들로서 학식과 실력이 결코 낮지 않은 사람들이다. * 박진의 머리를 얻은 멍청한 최질이 우직한 김훈을 패싱하고 권신이 되어 현종에게 정책들을 제안하는 것으로 묘사했는데, 실제 역사는 김훈이 현종에게 정책을 제안했다. 따라서 드라마 같이 '1인 군부독재로의 귀결' 전개를 하려 했다면, (박진 따위는 없이) '완항령에서 임기응변을 잘 펼친 김훈이 암투에 더 능하고, 통주성을 잘 지켜내서 최질은 외골수 스타일이었다' 식으로 배우 선정 및 역할 묘사를 줬어야 개연성이 있다. * 김훈·최질의 난이 아닌 [[삼보의 난|이각·곽사의 난]]이 연상되게 궁궐에 들리도록 만세삼창, 궁녀 겁탈, 임금 앞에서 칼겨누기와 발길질, 지능 비하 등 저질스러운 연출이자 역사에 없던 일들로 [[틀:대한민국의 병역의무자 및 군인 비하 사건|전쟁 유공자 및 군인들을 비하]]하는 [[역사왜곡]] 전개를 했다. 이탓에 이에 반대하는 청원들마저 생겨났다. [[https://audiencecenter.kbs.co.kr/cheongwon/petitionDetail?searchPetitionIdx=17657&pageNo=1|#1]], [[https://audiencecenter.kbs.co.kr/cheongwon/petitionDetail?searchPetitionIdx=17659&pageNo=1|#2]] * '''역사 왜곡 이유에 대한 추측''' * 이처럼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반란 세력을 이토록 무지몽매하며 상도덕을 저버린 이들로서 일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실제 역사 속에서 '최후에 현종이 이들을 주살한다'는 단 한 가지의 단순하고 말초적인 사이다 서사와 이 연출을 위한 정당성 부여를 위해 반란 세력을 단순하고 무능한 순수악으로 연출하여 의도적으로 시청자들의 비호감을 사려 했거나, 작가가 이들 반란 세력에 대해 현종에게 궐기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니 문관을 포함한 저들이 선이며 이들이 악이라는, 일차원적이며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단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전란 중 거란군의 악행의 경우, 실제로 거란군은 유목민족으로서 영토는 넓은 데 인구가 적고 주변국에 비해 농경 지식이 풍부하지 않았으므로 당사 침략국의 백성을 약탈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이 시작한 이 전쟁마저도 '''명분'''이란 게 중요시 되어 작중 거란군 측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기도 했다. 이들의 악행이 마땅한 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이러한 기록된 사실을 통해 양규 및 김숙흥을 연결하여 향후 그들의 거란군을 향한 격분을 연출함에 개연성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무관들의 반란 직후 묘사된 무관들의 행패는 이렇다 할 명분조차 사라졌다. 분명 반란 전까지만 해도 거란군을 상대로 가장 처절하고 치열하게 싸워주었던 무관들이, 반란 직후 고작 몇 화만에 상도덕마저 저버린 인간으로 타락해 버렸다.][* '최후에 현종이 이들을 심판한다'는 결과를 위해 없어도 될 것까지 무리하게 짜낸 개연성을 위해 희생된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자의 예시는 거란의 약탈과 양측의 치열한 전투를 통해 전쟁이 어째서 참혹한지 묘사할 수 있었다면, 후자는 역사에 대한 깊은 고찰과 탐구 없이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며 이들의 명분과 행동원리에 대해 조명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고작 욕구만 따르는 무능한 바보로 전락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란군을 두고 야만인이라며 비난하던 작중 고려 측 인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통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창작자로서는 가장 편하고도 위험한 길이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깊게 생각할 것 없이 이게 가장 편한 길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종에게 당위성을 부여한다 해도 김훈과 최질이 권력에 취해 빠르게 타락하는 동안 현종은 과오를 딛고 대오각성하는 것으로 그려도 될 일이었다. * '''2군, 서북면/동북면 군사 관련 문제''' * 지채문이 2군(응양군, 용호군)을 동원하여 반란군을 막겠다고 말하며, 이후 김훈과 최질이 6위의 군사들 외에 2군까지 포섭하는데, 정작 고려군의 2군은 '''김훈, 최질의 난 이후에 설치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 등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17~1018년 이전까지 고려군의 2군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1010년대 초반의 중앙군이 올바르게 6위만 소개되었기에 더욱 비교되는 부분이다.] 시대 순서를 틀린 [[불멸의 크리넥스]] 같은 묘사가 된 셈. * 25~26회에서 현종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북면과 동북면의 군사를 동원하려 했고 그들이 개경까지 진군했다고 묘사되는데, 정사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게다가 사료상 무관들이 궁을 침범해 현종이 요구를 들어준 것은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북면/동북면에서 개경까지는 보병으로 15~20일, 파발로도 5일은 걸리는 거리인데, 고작 하루만에 '''군사들이 개경까지 이동했다는 묘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려 시대에 [[KTX]]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체역사물]]이나, [[축지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양판소]]가 아니라면 말이다. * 차라리 역사기록이 엄연히 있는, 반란 직후 개경 주변 승려들이 반란에 반대하여 군사적인 움직임을 조직했으나, 김훈-최질 정권이 개경의 계엄령을 탄탄히 방비하자 결국 무산된 것을 스토리로 냈으면 되었을 일이다. 현종은 대량원군 시절에도 몽진 때도 사찰에서 생명을 건졌기에, 즉위 후 각별히 사찰들을 키우고 방문해 왔다. 따라서, 2~3회의 살해위기로부터 살아남았던 때처럼 각 사찰에 밀지를 몰래 보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 '''원정황후를 우매한 반란 가담자로 비하''' * 사실상 가장 논란이 큰 부분으로, 원정황후가 사전에 상장군인 김훈이나 최질도 아니고 종7품 주부에 불과한 박진에게 거래를 제의받아 이를 수락한 모습, 현종이 반란 진압을 위해 동원하는 군사들에게 따로 교서를 내려 돌려보내거나, 심지어는 궁궐을 지키는 병사들을 공격하라는 교서까지 내리는 등 반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작중에서 반란을 알게 된 원정황후가 뒤늦게서야 실상을 깨닫고 박진에게 격분하거나, 교서를 내린 것 역시 박진의 강압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나, 결국 '''적극적으로 반란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간주되고 있다.[* 전제 왕조에서 왕족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역모에 이름만 올려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나마 왕이 관용을 베풀면 유배로 끝나지만 최악의 경우엔 사약을 받았다. 황후가 반란에 관여했다면 아무리 협박받았어도 폐비될 일이다.] * 당연히 실제 역사에서 원정황후는 반란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앞서 설명했듯이 현종은 그녀의 사망 후 황후들 중 유일하게 현화사에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현종과의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원정황후가 원성황후에 대한 질투심에 눈이 멀어 반역에 동조하고, 이 때문에 관계가 사실상 반쯤 파탄나기까지 하는 황당한 전개가 이어졌다. * 김은부와 원성황후의 추방 역시 반란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기록이 없으며, 당연히 개경에서 추방당했다는 기록 또한 없다. 더구나 원정왕후 본인이 반란 직후에 박진에게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음에도 박진이 이를 강행한 것도 억지 전개다. * '''개연성 없는 가상인물 박진의 퇴출''' * 최사위가 충주호장 박진이 몽진 중 현종 시해를 하려 했다는 근거로 '당시 부재'를 드는 것은 억지 전개다. 강감찬이 그가 어깨에 화살자국이 있다며 증거삼아 끌어내리는데, 이 역시 전쟁을 막 겪은 국가에서 누구든 상처가 있기 쉬우므로 억지 전개다. * 좀 더 설득력을 주고자 했다면, 박진이 종적을 감춘 시기가 현종을 시해하려 했던 복면의 남자의 활동시기와 일치한다는 정도는 제시했어야 맞다. 어깨의 화살 자국의 경우에는 전쟁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가 '''충주 호장'''이고, 거란군이 충주에 들이닥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의 여파는 아닐 수 있으나, 박진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도 모르는데 그것만을 근거로 삼기엔 부족하다. 다만 상술한 대로 시기와 관련해서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어깨의 상처를 의심했다면, 정황상 의심된다는 명목으로 체포해서 조사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수사란 모든 것이 밝혀진 후에 심판하는 절차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행하는 것이고, 용의자가 의심스러울 뿐 아직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박진의 경우 심증도 물증도 드라마에서 묘사한 것만으론 애매하다는 것.] * 바로 다음 화에서 박진 본인이 상술한 점들을 근거로 빠져나가려 하자 추가로 증언자를 데려와 '박진이 이러저러하게 말했다' 증언을 시키는 식의 전개를 보인 걸로 보아 제작진 측에서도 26화 끝에 나온 명분만으로 박진을 축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연출이나 전개나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 '''저질 전개로 망해버린 전체 일정 지연''' * 이미 예고한 대로 '''고려 거란 전쟁은 총 32부작 작품'''이다. 쓸데없는 [[역사왜곡]]과 [[퓨전 사극]]과 권위주의적인 개연성도 핍진성도 없는 3류 정치질 암투로 점철된 [[쪽대본]]으로 너무나 많은 회차를 날려 먹었다. * 25~26회는 원래 설 연휴에 방영예정이었으나 앞서 역사왜곡 논란을 겪고 제작진이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결방까지 하고 만든 역사왜곡 편이어서, 시청자들을 우롱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후술하였듯이 27회까지의 대본 자체는 이미 22회 방영 시점에서 완성되었기에 사실상 시청자들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한 수작일 뿐이었던 것이다.] * 27~28회 내에 [[김훈·최질의 난]]을 마무리 짓는다 해도, 29회부터 32회까지 겨우 '''4개의 회차'''가 남게 되었다. 이래서는 '제목이 고려-거란 '''전쟁''''인 것조차 무색한 지경. * 상식적으로 전간기를 다루며 "통주 전투, 영주 전투, 압록강 전투 등을 거치며 정신용 등 고려군 지휘부가 거란의 유인책에 궤멸되는 것"이 1화, "곽주에서 고려군이 통주전투에서처럼 평지전을 벌여 수만명이 죽게 되는 것"이 1화, "송이 외교적으로 고려를 박대하고, 귀주성에선 반란도 일어나고, 가뭄도 일자, 거란이 지휘부-군사도 잃은 고려의 흥화진을 이번엔 가질 수 있게 되겠다 싶어 쳐들어왔으나 막아낸 것"이 1화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간기 양군의 전략 진화가 일괄 삭제 편집될 것'''이 예상된다. * [[제3차 여요전쟁]] 본 전쟁도 아무리 신속했던 기동타격전이었다 한들 [[제2차 여요전쟁]](6~16회, 10회분) 전개속도를 생각하면 3회분은 다뤄야 삼교천, 자주-마탄, 금교, 위주-연주, 귀주대첩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다 다룰 수 있다. 하지만 1회에 프롤로그로 공개했던 전투씬 몇 개만 달랑 남은 [[다큐멘터리]]로 드라마가 끝날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전투 뿐만 아니라 3차 여요전쟁의 발발과 전후 처리도 다뤄야하는데 이 모든 것을 다루기엔 4회분은 굉장히 빡빡하다. 귀주대첩은 30분 분량으로 사전 촬영하여 제작진과 갈등을 빚던 원작자 길승수도 기대해도 좋다고 할 정도였으나, 현재의 전개라면 기껏 사전촬영한 귀주대첩도 대폭 편집하거나 귀주대첩'''만''' 잘 나오고 나머지 묘사는 날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 이 지경이면 당초 제작진이 요구했던 시즌제대로, 1~16회를 시즌 1로 하고, 17~32회를 [[기록말살형|새로 다시 찍어]] 시즌 1만큼의 완성도를 갖추고난 다음 시즌 2로서 새로 재방영하는것이 훨씬 더 낫다라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